마음이 잘 맞았던 친구가 다니던 법대를 때려치우고 영화판으로 달려갔다.
그 이후 난 묘하게 영화감독,스태프들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영화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면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혹 그녀석 이름이 나오면 내 친구라고 자랑하고 싶어서..-_-^
아직 한번도 안 나온거 보면 아직 고전중인가 보다. 힘내라구 친구 !
책 중간 중간 영화 촬영 당시 사진이나 박찬욱 감독의 다소 느끼한 사진이 실려있다.
난 현장의 사진이 좋더라.
(재미있게 읽어서 김지운의 숏컷,할리우드 리포트 등 영화감독의 책을 더 읽어 봤습니다.
차후에 포스팅합니다.)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을 책에서 찍어봤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표지 전체를 얼굴로 도배해버리니 부담스럽다.
감독은 확실히 부각되나 디자인이 좀 ...그렇다.
각설하고, 이 책의 형식이 박찬욱 감독이 짧게 쓴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흥미있는 에세이들만
노트에 간추려 적어놓았다.
박찬욱 감독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역시 감독이라 그런가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다.
예전부터 느껴왔으나 정확히 말로 풀어내지 못했던 것을 시원하게 풀어나가는 걸보고 감탄을 했다.
건축가 류춘수님의 말씀처럼 프로란 표현해내는 데에 있어 숙련된 능력이 있어야 하나보다. 당연한가 -_-;
영화 제작 뒷이야기에대한 갈증을 다 해소하지 못했지만 유명 히트작들이 어떻게 탄생했고,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부분은 만족스러웠다.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내가 기록한것만 옮겨놓는다.
- [복수는 나의 것] 영화의 메시지 설명 中
" 이 영화의 반은 범죄자의 심정을, 반은 그가 피해자에게 쫓기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범죄자는, 왜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렇게 어려운데 저들은 저렇게 놀기만 하면서 호의호식할까 ? 생각합니다.
피해자는, 왜 다른 부자도 많은데 하필이면 나를 노리나, 알고 보면 나 , 보기보다 가난한데 도대체 왜 이러는가
하며 우울해합니다. 여기에는 억울한 놈 투성입니다.
범죄자는,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저지를 맘은 없었는데 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나 어리둥절해합니다.
피해자는, 결국 그놈이 악의를 가지고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내고서도 왜 나는 복수를 멈출 수
없나 의아해합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
- [공경경비구역 JSA]
작품 준비하시면서 남북문제에 관련된 과거의 작품들을 많이 보셨을 텐데요, 그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작품은 무엇이었습니까 ?
" 한 편도 안 보았습니다 "
영화광 감독으로 유명하니, 그 영화보기와 경험이 작품속에 녹아있을 것 같습니다. 작업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작품이나 감독은 ?
" 전혀 없습니다. 언제나 그럿듯이 염두에 두기는 커녕 조금이라도 기성의 영화와 비슷한 표현이 나오면
가차없이 삭제하느라 바빴습니다 "
- [류승범,류승완 형제에 관한 이야기 중]
" 내가 이 형제를 존경하기 까지하는 이유는 늘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진지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21세기를 살면서 그러기는 정말 어렵다는걸 여러분도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
이 에세이에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단편영화제 상을 받게 된 류승완 감독이 상 받으러
가기 직전에도 공사판에서 막노동하다 시멘트 독이 올라 얼굴이 반점으로 뒤덮여 버린
일화가 나온다. 류승완 감독이 배고픈 시절을 보냈다는건 대충 알고 있었지만 상 받기 전날
에도 노가다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꿈을 이루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게 대단하다.
스무살때 3일 막노동을 해본 경험이 있다. 원래는 친구들과 일주일간 노가다를 해보며 삶을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을 했으나 삼일천하 였다 -_-;
지금 글쓰다 보니 생각이 난다. 작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녹초가 된채로 전철을 타면 땀냄새를
풀풀 풍기던 녹초가 된 우리를 사람들, 특히 여성분들의 눈길과 피하던게 기억이 난다.
다 죽어가며 집에 돌아오면 다른 무언가를 할 에너지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씻는것도 귀찮고 그저
아무생각없이 누워서 잠이 들기만 기다렸다.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시간을 쓰고 노력
하는건 말처럼 만만한게 아니다. 어쨋든 류승완 감독 대단하다 !
- [복수 3부작 /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친절한금자씨 / 은 어떻게 발상되었나요 ?
" [복수는 나의 것]은 [공동경비구역JSA]에 이어 남한 내 계급 문제를 다루어보겠다는 포부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올드보이]는 전편과 달라져야 한다는 당위가 작용하여 [복수는 나의 것]이 단순하고
조용한 미니멀리즘을 지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대사도 줄이고 아예 두 주인공중 하나를 벙어리로
정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또 싫증나 [올드보이]가 그 모양이 되었습니다.
감독의 말을 간단히 표로 그려보면 이렇다.
--------------------------------------------
복수는 나의 것 ㅣ 올드보이
--------------------------------------------
최소의 영화 ㅣ 최대의 영화
송강호의 영화 ㅣ 최민식의 영화
얼음의 영화 ㅣ 불꽃의 영화
--------------------------------------------
두 남자끼리 대립하는 투쟁의 가운데 여자의 내면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영화의 주인공을 여자로 결정했습니다.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할 일은 남자를 제대로 혼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상대가 먼저 잘못해서 남을 해친다 -> 상대가 먼저 잘못을 ? -> 그럼 복수 ? ->> [친절한 금자씨]
- 내가 이 책을 산 이유중 하나는 영화촬영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스태프들이 유기적으로 작업해서 만들어지는게 영화가 아닌가.
(씨네 21)의 요구에 의해 [복수는 나의 것] 촬영당시의 제작 일지가 실려있다.
하도 재미있게 읽어서 아쉬웠다. 이왕이면 다른 작품 제작일지도 실어주시지..ㅡㅜ
몇페이지에 걸쳐 나오는데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가진 스태프들의 말만 따로 엮어서 일부만 적어봤다.
이 각자의 입장을 보며 대충이나마 영화현장 돌아가는걸 알수 있어 재미있었다.
" 6월 21일. 박찬욱의 새 각본을 함께 손봤다. 말로는 미니멀한 영화를 지향한다면서 설명적인
장면이 너무 많았다. 그래 한 스무 신쯤 없애줬더니 안된다며 막 발버둥을 친다.
내 작품 쓸 땐 가차없이 칼질을 해대던 그가, 제 눈의 들보는 못 본다.
제목을 [복수는 나의 것]으로 바꾸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 - 이무영(공동각본)
" 8월 13일. 첫 촬영부터 장난이 아니다. 버티고개역, 그 긴 에스컬레이터 측벽의 형광등 60개를
다 갈아 끼웠다. 이 컷, 편집에서 잘리기만 해봐라 " -(조명부)
" 8월 14일. 첫 촬영 분량 데일리를 확인해 봤는데, 에스컬레이터 조명부가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하는 수 없지 뭐 " -(박찬욱 감독)
고생한 조명부의 욕이 들리는 것 같다. ㅅㅂㄻ ...ㅋㅋ
" 8월 19일. 감독이 배경으로 저 아래 멀리 보이는 학교 운동장에 흙 먼지 일으키면서 축구하는 사람들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연출부의 지원 요청을 받고 나서, 완전히 개처럼 뛰어다녔다.
매니저가 이런 거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터덜터덜 올라오는데 지나가는 촬영부 지들끼리 하는 말,
' 그거, 하나 두 안보이는데 왜 시켰나 몰라 ' .... ? " (신하균 매니저)
" 9월 2일. 부검실 앞 잔디밭으로 설정 된 보라매 공원 촬영.
조용한 분위기에서 송강호가 흐느끼고 최 반장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장면인데, 현장에 가봤더니
경로잔치, 판촉행사, 힙한 댄싱팀의 연습장까지, 완전히 소음의 아수라장이었다.
돌아버리는줄 알았다." (사운드 믹서)
" 9월 9일. 강간 위기에 놓인 아가씨 역을 하는 아가씨가 에로 비디오 찍으러 가버리는 바람에 촬영이
중단 되었다. 한숨만 쉬고 있는데 감독님이 찾으신다는 말이 들린다.
예감이 안 좋았다. 역시 그랬다. 시트로 몸을 가리고 팔 다리만 내놓고 있으면 벌거벗고 누운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근데 대역은 누가 하죠 ? ' 대답은 안하고 빤히 내 얼굴만 바라보던
감독님의 그 느끼한 표정 " (스크립터)
" 9월 15일. 배두나 방 조명을 미리 다 세팅해놓고 나와서 놀았다.
남자 스태프들은 현장에 못 있게 하니까. 하루종일 밖에 나가 족구만 했다.
맨날 정사 신만 찍으면 좋겠다 " (조명부)
" 10월 5일. 순창 촬영 5일차.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보배식당 아줌마가 쳐들어 왔다.
60인분 밥값을 물어내라고 난동을 부린다. 보배식당 밥은 물려서 중앙식당으로 바꾼게 화근이었다.
오늘 아침은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차려놓고 물어내라고 생때를 쓰니..." (제작부)
" 11월 13일. 순창 촬영은 악몽 같다. 아침 안개 걷히면 11시. 오후 4시 반이면 해 떨어져. 결국 밥 먹는 시간
빼면 하루에 다섯 시간도 못 찍는 셈이다. 거기다 때때로 비오죠. 걸핏하면 흐리죠...
찍을 분량은 엄청난데 답이 안나온다 " (박찬욱 감독)
" 11월 14일. 여기 촬영은 정말이지 꿈결 같다.
밥 먹는 시간빼면 하루 다섯 시간도 못 찍는 셈이다. 그러니 매일 5시만 되면 쫑.
이튿날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으니까 마음껏 수다 떨고 원 없이 놀아도 된다.
아, 매일 이런 촬영만 했으면 " (미술팀) ㅋㅋ
" 1월 8일. 보배식당 아줌마가 또 전화했다. 매일이다.
미치겠다. 오늘은 자기 시아주버니가 청와대 출입기자인데 거기다 얘기해서 영화사를 박살내버리겠단다 "
(제작부)
책엔 더 자세히 , 길게 나오니 사보시라~
- [공동경비구역 JSA] 소피라는 역할로 왜 이영애씨를 캐스팅하셨나요 ?(나도 궁금했다)
그녀의 CF 이미지는 영화에서의 역할과는 분명 상반되는 지점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 이 역할로 누구를 기용할지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자시고도 없었습니다. 백인과의 혼혈아, 법대 출신의
지성인, 능란한 영어 구사력, 연기력... 달리 누가 있겠습니까 ? 한 가지 더 든다면 영애씨가 글래머
배우가 아니란 점이 있습니다(미안해요 영애씨) 지나친 섹스 어필은 여기서 해가 된다고 봤거든요.
남자가 해도 전혀 다를 바 없는 여성 역할, 그것이 내가 생각한 소피였습니다(이역은 원래 남성이었단다)
" (...중략) 결국 휴전선 남북의 한국인들은 모두 상대방이 쳐들어올까봐 겁에 질려 있는 셈인데, 여기서
문제는 상대에 의한 선제공격의 공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차라리 이쪽에서 역선제공격함으로써
그 공포를 증식시키고 싶다는 유혹이 커진다는 점입니다.그리고 재미있는 건, 그게 바로 내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다루고 있는 얘기라는 사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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