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양식,생각의 좌표,국밥
공책 2010. 1. 5. 2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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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 - 55~87p
나에게는 시간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선정한다는 것은 선택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선택하지 않는 것을 물리치는 것으로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나는 무섭도록 시간의
협착함과 시간이 하나의 차원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폭이 널따란 것이었으면
하였건만 그것은 한날선에 지나지 않았고,나의 욕망들은 그 선 위를 달리면서 서로 짓밟지 않으면 안 되었
었다. 나는 이것 아니면 저것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이것을 하면 곧 저것이 아쉬워져서,나는 번번이 애
타는 마음으로 두 팔을 벌린 채 아무것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었다. 잡으려고 팔을 웅크리면 무엇이든
'하나'밖에 잡히지 않을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때부터 다른 많은 공부를 단념할 결심이 서질 않아서
무슨 공부든지 오래 계속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나의 일생의 과오가 되고 말았다. 그러한 대가를 치러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은 너무 값비싸게 생각되었고,이론으로써 나의 고민은 해결될 수 없었다. 휘황찬란한 것들
이 가득 찬 시장에 들어서면서 쓸 수 있는 돈이라고는(누구의 덕분인가?)너무나 적은 액수에 지나지 못하는
것을 ! 쓸 수 있는 돈 ! 선택한다는 것은 영원히,언제까지나,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었으며,
수많은 그 '다른 것들'이 어떠한 하나의 것보다도 더 좋아 보였었다.
지상에서의 일체 '소유'에 대한 나의 반감은 그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것밖에 소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두려운 것이다. -74 ~75p
나는 피고람을 미워하였었다. 피로는 권태로부터 생긴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물의 다양성에 의지해야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78p
나는 벌판으로 나를 따라온 미르틸에게 말하였다. "이 아름다운 아침,이 안개, 이 빛, 이 맑은 공기, 너의
생명의 맥박, 네가 이런 것에 송두리째 몸을 바칠 줄 안다면, 그 감동은 너에게 얼마나 더 클 것인가.
너는 그러려니 생각하지만 사실은 너의 가장 귀한 부분이 갇혀 있는 것이다. 네 아내,네 서적들,네 학문이
그 귀한 부분을 사로잡고 있어 신과의 접촉을 방해하고 있다. "
"바로 이 순간에,생의 벅차고 온전하고 직접적인 감동을, 그 밖의 것을 잊어 버리지 않은 채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너는 생각하느냐 ? 너는 사고의 습관에 얽매여 있다. 너는 과거에 살고 미래에 살며,아무것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지 못한다. 우리들은 한 토막 순식간에 찍히는 한 장의 사진과도 같은 생을 타고날 뿐,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순간들 ! 미르틸, 너는 알게 될 것이다. 순간의 '현존'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왜냐하면 우리들 생의 각 순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과 바꿔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오직
그것에만 전심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미르틸,네가 바라기만 한다면,네가 만약에 안다면, 이 순간에 너는
아내도 자식도 잊어 버리고 지상에서 홀로 신 앞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들을 생각하고 너의
모든 과거,사랑,지상의 모든 일을 마치 그것들을 잃어 버릴까봐 겁내듯이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다.
나로 말하면 나의 모든 사랑은 순간마다 새로운 경이를 준비하여 너를 기다린다. 나는 언제나 그 사랑을
알고 있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사랑이다. 미르틸, 신이 갖추는 모든 형태를 너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 중의 한 형태만을 너무 바라보며 그것에 심취하는 나머지 장님이 되어 버리고 만다. 너의 숭배가 고정
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마음 괴롭다. 너의 숭배가 좀더 사방으로 퍼진 것이었으면 한다.
닫혀 있는 모든 문 뒤에 신은 있는 것이다. 신의 모든 형태는 사랑할 만한 것이며 그리고 모든 것이 신의
형태인 것이다. " -83~85p
ㄴ 앙드레 지드의 고민은 낯설지 않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내내 떠오른다.
조르바가 떠오른다. 어제 이후로 지금의 삶에 매몰되어 , 쪼그라든 가슴으로 숨죽이고 있는 쪽팔린
내 자신을 찌른다. 나는 왜 벌써 꼰대가 되어가는가 ? 왜 호기심을 잃어 버렸는가 ?
모험하지 않고 주저 앉아버린게 언제부터인가 ? 내 자신의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소리없이 무너져가고 있는 내 자신의 투영인것인가 ? 과거와 미래에 속박당한 삶에서 벗어난다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가진것,내가 잃어버릴 것에 대한 셈으로 머리가 돌아간다.
고작 이 정도 그릇의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이대로 굳어버릴것인가 ?
<생각의 좌표> 96~152p
21세기의 이 땅에선 물질을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한 욕망이 사회문화적 소양을 포함하여 인간 존재를
풍요롭게 하기 위한 모색과 긴장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110
자율성은 자신의 삶에 청백의 도도함을 뿌리내리기 위한 자기 통제다. 자율성이 없고 자기성찰을 하지
않는 회색인들은 올곧음을 배격하며 정직성 앞에서 비겁하다. 주위에 올곧음과 정직성의 청백이 있을 때
자신의 회색이 검정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직장에서나 군대에서나 학교사회에서나 청백한 사람을 따돌
린다. 그리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나", "좋은 게 좋은 거야"라고
말한다. '회색인들의 회색의 사회'에서 흰색이 조직과 사회를 위해 죽어야 하는 이유다. 흰색은 검정은
물론 회색까지도 검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회의 각 부문에서 회색은 힘을 합쳐 공동의 적인 흰색을 축출한다.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악화는 부문을 뛰어넘어 강력하게 유착한다.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라는 말로
포장된, 흰색에 대한 이 사회의 부정적인 반응은 내부고발자나 촌지 거부 교사들에 대한 따돌림처럼
고발에 대한 정서적 반감의 표현이라기보다 자신이 검정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회색의 사회에 내재한
방어본능의 반영이다. -112~113p
회색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립'이라는 멋진 수사의 혜택을 입어 양쪽의 권리를 누리며 어느 한쪽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 불온이 오히려 교양이며 상식인 사회에서 상식과 몰상식의 중간은 몰상식일 뿐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대표하듯 '중도 실용'을 내세워 명분과 실리를 함께 취한다. 중간파들이 균형을 주장하는
것은 대게 명부과 실리를 함꼐 취하려는 포장술이지만 지식인들조차 이를 역학 관계나 현실의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그러나 명분과 실리 사이에 황금분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중간파는 회색파의 다른 이름
이다.그래서 나에게 실용이란 항상 이기는 쪽에 붙어 명분도 채우면서 권력도 맛보려는 처세술이다. 114p
삼성 특검 결과가 보여준 것은,삼성은 이미 자신의 검은색을 탈색할 만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이들은 간혹 삼성의 행태를 비난하면서도 삼성왕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흰 것이 흰 채로, 검은 것이 검은 채로 각기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흰것과 검은 것이 서로 뒤엉키고 버무려
진, 영악한 사람들을 위한 회색의 사회 모습이다. -114p
서민은 서민 전체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모두 그럴듯한 수사로 '우리'의 문제를
말한다. 그러나 의식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각 '개인'이다. '서민 나'들은 자본이 주인인 자본주의 사회
에서 자본의 마름이나 머슴이 되겠다고 다투면서 선망과 경쟁의식으로 '서민 우리'를 배반한다. -116p
민주주의 정치제도 아래에서 20대 80의 양극화 사회가 관철되는 것은 '80'에 속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미래상으로 자신을 일치시켜 오늘의 자신을 배반하는 것도 한몫한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웃음거리로 만든,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을 가진 '나'들의 신음 소리는 오늘도
신문과 방송의 사회면을 장식한다. -117p
남달리 형성한 '교육자본'을 통해 성공한 엘리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보잘것없음'이라면 이 사회는
참담할 정도로 보잘것없다. 자유인,문화인,평화인이 가당키나 한가. 검사는 국가의 엘리트들인데 '법정의'
의 파수꾼이 되라는 소명을 받은 그들이 삼성왕국이 던져주는 떡값을 받아 챙기고 그 경비견이 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123p
'나는 옳다'를 전제로 한 '다름=틀림'의 등식은 타자만을 대상화함으로써 자아를 성찰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17세기 인문주의자인 바나주 드 보발은 "견해의 대립을 통해 이성을 눈뜨게 하지 않으면 인간을
오류와 무지로 몰아가는 자연적 성향이 지체 없이 진리를 이기게 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아닐까. -133p
우리는 비교라는 말에 관해 성찰해야 한다. 남과 비교할 땐 서로 장점을 주고받기 위한 경우로 한정할
일이다. 나의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비교는 멀리 하라는 것이다. 그런 비교는 자기성찰을 하지 않는 소인배
들이 주로 즐기는 일인데, 다수자일수록 다수자에 속한다는 것에 자족하고 자기성숙을 게을리 할 수 있다.
남과 비교하는 일이 아닌,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된 오늘의 나, 오늘의 관계보다 더 성숙된 내일의 관계를
위한 비교에 머문다면 다수자,소수자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137p
ㄴ어제 느꼈던 실망이 부끄럽다. 홍세화는 오랜시간 한국에서 벗어나 있었기때문에 한국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일까 ? 현재 한국 사회의 폭력성과 지도층의 파렴치함에 대한 두리뭉실했던 생각을 단칼에
정리해준다. 우석훈의 건축 미학과 진중권의 자존, 홍세화의 성숙개념을 섞어내면 뭔가 나오겠다.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에서 읽었던 문장이 생각난다.
"이토록 정신분열적인 시대에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걸가 ? "
끓어오르는 욕망을 해갈해달라고 투표를 하지만 뽑힌 놈은 불만을 증폭시키고, 다시 포퓰리즘으로
이어지는 미친 싸이클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가기란 참 빡세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을까 ? 우린 고작 이것밖에 안되나 ?
스스로 얻어낸 경험이 없다는 한계가 이렇게 발목을 잡는 것인가 ?
<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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