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프랑스 사회를 엿보고 싶어 선택한 책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민주주의.인권, 그리고
우리 사회속의 '나'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답답하고 짜증난다며 외면하고만 있었다.

최근 이혼한 이다도시 -_-;,68혁명,에펠탑,똘레랑스 … 프랑스하면 생각나는게 이것밖에 없다.
내 얄팍한 지식에 무언가를 더하고 싶었더니, 저자는 프랑스를 통해 우리나라를 더 다양한 측면
에서 바라보라고 하고, 현실을 바로 인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여당에 반대하면 졸지에 좌파가 되버리는 현실에 저자는 확실한 좌파 성향의 자유기고가.

정부나 여당에 반대하면 빨간색이 칠해지고, 맙소사 21세기에 아직도 통한다, 희생양들은
낙인이 찍혀져 변호의 기회 대신 물대포가 겨냥하는 한국에 똘레랑스는 존재하는가 ?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숙의가 이뤄질 수 있는 기회마다 권력에 의해,족벌 언론에
의해 와해되었던게 사실이다. 제대로 공론화 되지도 못한채 민주주의는 성숙할,제대로 부화할 기회
조차 박탈당한게 아닐까 ? 


스스로 얻어낸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머리가 커질 기회도 없었던 어정쩡한 시간들.

사회적 합의, 공론화의 기회때마다 가로막은 조중동이 아직도 나라를 휘두른다.
조선일보가 그간 해온 짓을 국민들은 알면서도 모른채하는 것인가 ? 몰라서 모른채 하는 것인가 ?


프랑스가 걸어온 것처럼 이미 빈부 격차는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고 극단적인 사고라는 플루가
퍼져버린 현실이 안타깝다. 새벽이 오기전이 가장 어둡다며, 그저 참고 인내하면 되는 것인가 ?

일상에 치여, 혹은 나라가 어떻게 되든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각성하고 제 권리를 행사하는
'그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  지금의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

사회 '시스템'의 문제까지 개인이 알아서 헤쳐나가라며 등떠밀고 사방에서 정신을 쏙 빼놓는
재주는 알아줘야 한다. 뭐 생각할 틈을 줘야지. 각개전투로는 힘들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고통받는 타인과 연대하고,그들을 도울 것이며, 나아가 이 일을 위해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


  

프랑스에서 일상적으로 자주 듣는 말이 '사데팡'이다. 이 문구는 '~여하에 달렸다'로 번역
번역할 수 있고, 어감상으로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라는 의미다.



대상이나 목적,방법,장소,시간,취향,소제나 주제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한 관점만 성립
되는게 아니라 이런저런 각도의 여러 관점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똘레랑스는 종교전쟁이 한창이던 16세기에 간간이 언급되다가, 17세기 영국 철학자 
존 로크와 그의 영향을 받기도 한 볼테르를 비롯한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특히 부각되어 철학적으로 변증되었다. 당시는 신교와 구교간의 충돌이 빚어낸 폭력
으로 엥똘레랑스한 사회 현상들을 신물나게 겪고 난 후였다. 로크와 볼테르가 조약서를 
쓰면서까지 큰 소리로 '다른 것을 존중하자'라고 외쳐야 했던 배경엔 '다름에 대한 폭력'
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젠 A가 믿는 바가 나와 다르더라도 제발 그를 증오하거나
모욕하거나 특히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말자'라며 '이성'에 호소한 의식이 똘레랑스였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일수록 사회적 연대감을 조성하기 힘든게 현실이다.
'빈곤'이 좋은 예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현장 연구를 통해 분석했던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는 방대한 양의 앙케이트로 구성된 [세계의 비참]에서 가난과 고통의 사회학
을 시도한 있다. 거기서 부르디는 '빈곤'과 '고통'은 우연이 아니라 그 사회의 다양한 요소와
연관되어 나타나고 지속되는 하나의 사회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시사하듯 '가난'은 당사자의 탓으로만 치부되는 개인의 수치가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
들이 함께 나눠야 하는 사회의 고통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소비 중심의 이기적인 사회
에서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연대하며 공유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파업으로 생활의 불편을 겪지만 사람들은 시위나 파업 자체에 반감을 보이지 않으며
'덤덤하게 감수한다' 나에게 권리가 있듯이 그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국가 이익이 곧 국민의 이익이지만 국민들을 소외시킨 개혁은,곧잘 국가와 국민의 충돌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선출한 것이 민주주의 이듯이,
비슷한 생각이나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단체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며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도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정책 부재'는 '국민들의 불만'을 낳고 이것은 '국민들의 불안을 이용한 포퓰리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유독 프랑스 정치계만이 아니라 현대국가라면 정도만
다를 뿐 모두 겪는 것이라 숙고해볼 만하다.



극우가 정치인들에게 '경고'와 '수치'인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의 태동 원인이 바로 정치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정치가 강행될수록 그 불만으로 사회에
극단적인 사고가 깊어진다는 점을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극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사회나 도사리고 있다.
특히 사회가 어려울수록 더욱 힘을 얻는다.


이토록 정신분열적인 시대에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걸까 ?


글쎄...나도 정확히 모르지만, 그래서 '무엇을'이라는데 대해 답할 수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좀더 명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 아닐까?
이렇듯 정신분열적인 시대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말야. 적어도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는 인식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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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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