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전의 나는 괴로움에 서성이다 지나가던 매장에 걸려있던 자전거를 사서 타기 시작했다.


※ 영화 [챔피언 프로그램]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감상전이시라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숨이 턱에차고 허벅지가 뻐근해질때까지 페달을 굴리다보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개운함마저 느꼈다.


얼굴과 팔 다리에 느껴지는 바람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늦은밤 자전거 라이트에 의지한채 농로를

달리며 맞는 시원한 바람의 맛은 라이딩 후의 막걸리와 함께 인생 기쁨 베스트에 들어간다.


틈만 나면 잔차질하러 다니다 랜스 암스트롱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그는 내 영웅이 되었다.

그가 출전한 투르드프랑스의 영상을 찾아 질리도록 보다 나중엔 거실에서 랜스 영상을 틀어놓고 같이 

싸이클을 탔다. 영상에 나오는 구간에 맞춰 랜스의 페이스 맞춰 페달질하다 허벅지에 쥐가 나기도 했다.


산악 업힐 구간에서 랜스처럼 페달링을 가볍게 할 수 있을까해서 마음맞는 형님들이랑 퇴근후 공동묘지

업힐 연습을 하던 때도 있었다. 물론 죽을랑말랑 경우 올라가는게 현실이었지만.


혼자 타는 시기를 지나 자전거에 미친 사람들이랑 틈만나면 산으로,도로로 라이딩하러 나가고 아마추어

대회도 나가보는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하루가 다르게 밝아져갔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자전거라는게 참 묘해서 언덕 오를때는 내팽겨쳐버리고 싶은데 아무리 높은 언덕이라도 결국 내리막은

나오고 내리가즘을 선사한다. 타면 탈수록 평속도 늘고 허벅지도 단단해져서 더 먼거리를 갈 수 있다.


랜스 암스트롱2009년 랜스 자서전 나왔을때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


자전거와 랜스 암스트롱에 빠져살던 2009년 랜스의 자서전이 나오는날 서점에 달려갔다.

랜스 암스트롱은 안장위에서 무슨 생각을 할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에게 물어봤다.


시 : 랜스.경기 내내 대체 무슨 생각을 합니까 ? 저는 2시간만 달려도 머릿속이 비어버리는데요.

랜 : 내가 항상 받는 질문이다. 별로 흥미로운 질문은 아니다.

     굳이 답하자면 나는 사이클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다른 곳을 해매지 않는다.

     다양한  구간에서 써야 할 기술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거듭 말했다.

     이 구간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계속해서 나 자신을 몰아가야 한다고.

     경쟁자들 중 누군가가 어택할 때는 대비하여 항상 경쟁자들을 주시했다.

     사고를 당할까봐 주위에 있는 것들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 본문 302쪽.



      고통은 일시적이다.일 분, 아니면 한 시간, 후루 , 일 년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고통은 잦아들고, 그 자리를 다른 것이 메우게 된다.

     하지만 고통과의 싸움을 중간에 그만 두면 고통은 영원히 지속된다.

     고통에 항복하면 고통은 평생 나를 따라 다닌다. 그래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때면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무엇과 함께 살아가고 싶으냐고.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것. 그리고 싸움을 계속할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보상이다.

     그 어떤 트로피보다 훌륭한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내가 고통을 좋아한다는걸 아실 것이다.왜 고통을 좋아할까 ?

     고통은 자신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그게 이유다. 경주마다 선수가 자산의 진정한 적수는

     바로 자신이라는걸 깨닫는 순간이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나는

     호기심이 최고조에 달하고 , 매번 내가 고통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진다.

     내가 내면의 나약함을 발견할까. 아니면 내면의 힘을 찾아낼까 ?

     내가 과연 경주를 끝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고통이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엔 감격하며 읽었던 문장이다. 그의 도핑사실을 알고 난 이후 모든 관심을 끊어버렸다.

저 랜스의 자서전은 어떤 무명작가에게 대필시켜 나온 문장일지 모른다. 

 

암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고통스러운 트레이닝을 통해 몸을 만들어서 챔피언이 된줄 알았다.

재단을 만들어서 수많은 암환자들을 지원하고, 격려하고, 수많은 누군가의 영웅이었던

랜스 암스트롱이 사실은 약쟁이였다니.




랜스 암스트롱을 잊고 살았는데 어젯밤 유플릭스 영화들 훑어보다 발견하고 감상했다.

그가 도핑한 사실만 알았지 그 과정은 알고 싶지 않았는데 덕분에 자세히 알게되었다.


영화는 투르드프랑스를 재패해나가는 일련의 시간속에서 랜스 암스트롱을 발가벗긴다.

영화 중간 중간 라이딩 장면은 실제 랜스 암스트롱의 경기 장면을 넣어놨다.




암을 고치고 나서 랜스 스스로 윤리따위 내팽겨쳐버린 의사를 찾아가 프로그램에 끼워달라고 한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The Program 인데 국내에선 챔피언 프로그램으로 개봉했다.


한때 미쳐 살았던 미드 닥터 하우스에도 사이클 선수가 도핑을하다 잘못되어 실려나오는 에피가 나온다.

그 에피에서도 적혈구 자가 수혈 도핑이 나온다.


랜스는 자신의 피를 빼놓았다가 적혈구만 추출해놓은 후 경기전에 다시 수혈을 하는 수법을 썼다.

영화에서도 나오는 EPO를 맞아서 적혈구 생성을 촉진해서 적혈구 수를 늘리고 산소 운반 능력을

향상시켰다. 이렇게 하면 지구력이 극대화되고 운동능력이 향상된다.



챔피언 프로그램에선 그가 어떻게 도핑을 하고, 어떻게 도핑 테스트를 피해가는지 그려진다.

이 영화는 랜스 암스트롱의 실체가 까발려지고 나서 그의 도핑방법이 공개되었는데 그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한 영화이기 때문에 다큐영화처럼 도핑에만 촛점을 맞춰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투르드프랑스는 경기가 끝난 직후 도핑테스트를 하는데 랜스는 식염수를 몰래 맞아서 적혈구

농도를 희석시키는 방법으로 빠져나간다.


후반부엔, 결국 걸리지만 랜스가 그의 힘과 돈으로 위원회에까지 영향을 미쳐 모든 의혹에서 벗어나고

성공적인 은퇴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무려 미국인이 투르드프랑스 7회 우승.



선테이타임즈의 월시는 모든이가 랜스에 환호할때 갑작스레 경기력이 향상된 랜스에게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집요하게 파고 들지만 영웅이 되어버린 랜스를 파고들자 그는 고립된다.


언론인의 사명을 다하는 그는 싸이클 경기라는 세계속에 편입된-언론포함-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고립되고 , 건드렸다는 이유로 벌금을 내고 묻혀진다.




거짓으로 탄생한 영웅과 그를 둘러싸고 빠르게 이권이 생기고 하나의 카르텔이 되어 똘똘뭉치는

현실세계가 그려진다. 그리고 때론 그 거짓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결국은 모래성이다. 

 

벤 포스터가 연기한 랜스 암스트롱은 약쟁이일뿐만 아니라 인간성도 그지같다.



랜스 암스트롱의 오래전 경기를 보다보면 같은 선수들 등을 쳐주며 격려해주는 장면이 꽤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순간이 사실은 같은 선수들 입막음하고, 갈구는거였다고 한다.


내 감동 물어내 !


투르드프랑스 2003년 STAGE 15 경기는 지금도 기억난다. 그의 경기 모습은 영웅 그자체였다.



옐로우 저지를 입고 포스를 내뿜던 랜스의 2003년 모습이다.



랜스가 치고 나가는 도중 관중이 흔드는 노란 손수건에 핸들바가 걸려 넘어지고 만다.



랜스는 넘어지고 나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넘어지면서 팔뚝이 도로에 갈려 피를 흘려가며 선두를 따라잡기 시작한다.

당시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 장면을 봤다. 

랜스가 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들이 고작 관중의 손수건에

날라가는건 아닌가. 랜스의 마음은 어떨까 등등 쓸데없이 감정이입했다.


저 구간은 업힐 구간으로 2KM 봉우리를 올라야하는데 넘어진 후 다시 페이스를 되찾고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러더니만 1위로 오르고 있던 선수의 등을 두드려주고나선 치고 나간다.




그리고 나선 결국 우승하는 장면이다.



정말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감동에 휩싸여 대체 몇번을 되돌려봤는지 모른다.


일반 구간고 아니고 업힐에서 넘어진 후 다시 페이스를 회복하고 따라잡는건 인간의 체력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엄청난 찬사를 받았는데...내 감동 물어내 !


적혈구 자가수혈과 EPO 도핑으로 타고난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고 영웅이 되었던 사내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


그도 순수하게 바람맞는 기쁨으로 페달링하던 때가 있었을텐데.


투르드프랑스를 처음 경험하면서 경쟁자들은 적혈구 수 자체가 자신과 달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좌절해서 일까 ? 그래도 미국에선 내가 최고였는데 하던 오만 ?


미국인들의 영웅이기도 했던 그가 오프라윈프리쇼에 나와서 자신의 도핑사실을 시인했을때

상처받은 시컴시컴한 남자들의 마음은 누가 달래주나.


영웅의 몰락을 지켜보는건 입맛이 참 쓰다.


나이들면서 참 별로인게 영웅인줄 알고 좋아했던 이들의 진실을 알게된다는 것이다.

어느 존경하던 작가의 정치성향과 그의 발언들을 보고 충격받아서 서재의 책들을 싸그리 갖다 버렸던게

생각이 난다. 


나이든다는게 때가 탄다는 것일까 ? 원래 때 탄사람이 세월지나 실체가 드러났을 뿐일까 ?


믿었던 것들에대한 배반으로 상처받는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은 오늘도 술잔을 기울여야겠다.

랜스 암스트롱은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무심코 본 영화 한편에 아아..



 

Posted by 시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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