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소설 <향수>에서 악취와 향기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주인공 그루누이는 어물전에서 태어나 곧바로 생선내장 쓰레기 더미에 던져진다.
악취 속에서 나온 냄새의 달인은 여성의 체취에서 궁극의 향수를 발명한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향수를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향수>의 압권은 그루누이가 냄새로 자신의 처형장면을 보러 모인 군중을 집단
섹스의 광란으로 몰아가는 장면이다. 하지만 궁극의 향수가 영원할 수는 없었다.
벌거숭이로 깨어난 군중은 죽음의 냄새에 놀아났다는 사실에 치를 떨어야 했다.
미국의 냉전선동가 조지프 메카시에겐 출세와 애국이 뒤엉켜 있었다.
메카시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와 정치에 뛰어든다. 1946년 상원선거에
서 훗날 '메카시즘'이란 이름을 얻게된 '아니면 말고'식 색깔론으로 재미를 봤다
경쟁후보를 '빨갱이' 냄새가 난다고 하거나 비애국자로 몰아간 것이다. 냉전과 중국
공산화 등으로 심란해하던 미국인은 1950년 매카시가 공산주의자 색출을 주장하며
"모든 것이 이 손안에 있다"고 서류뭉치를 흔들자 반공 히스테리의 도가니에
빠졌다. 매카시가 빛을 발할수록 미국의 자유는 빛을 잃었다. 미국인이 매카시에서
깨어나 치를 떨기까지 4년이 걸렸다.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 NPR가 한국식 매카시즘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출점 이후 국가보안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한국에 새로운 공포가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 선진국인 한국에서 정부가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는 시대착오도
꼬집었다. NPr는 북한의 위협을 앞세운 한국 정부의 조치가 소중한 가치인 자유를
훼손시킨다고 지적했다. 한국식 매카시즘도 치를 떨며 끝날 것이란 충고인 셈이다.
역사적 극단의 경험은 극단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이정표와도 같다.
그루누이의 향수처럼 독일이 히틀러로 돌아가선 안된다는 무식적 합의만큼이나
미국인도 매카시의재연은 안된다는 믿음을 공유한다. 미국 언론은 한국에서
정적을몰아내는 방편으로 서로를 감시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매카시즘의 광기를
걱정했다. 여전히 한국에선 애국으로 포장한 색깔론이 정치꾼들의 출세수단으로
유효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우리는 아직 치를 덜 떨었다는 의미일까.
소스 : 경향신문 유병선 논설위원 사설 읽던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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