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11.11 오전
ㄴ 병원에서 읽으려고 가져간 책. 뭔가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는 비겁했다.
자신이 직접 마주칠 부분과 독서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다르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배움.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음에 다시 읽을 것.
참, 조한혜정의 책에서 빅터 프랭클이 언급된 걸 보고 선택.
+ 2009.11.16 책을 다시 훑어보고 나서
ㄴ 우석훈의 책에서 [바이오스피어2],조한혜정의 책에서[죽음의 수용소]가 언급된 걸 보고 아무생각없이
이번 입원기간 동안 읽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책은 모두 '인간실험'에 관한 책이다.
우석훈과 조한혜정이 그렇듯, 두 책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두 책을 포개어 읽다보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어나던 일과 바이오스피어 2에서 일어나던 일들이
다르지 않았다. 빅터 프랭클의 친구가 수용소내에서 희망을 잃고 스스로 퇴화하던 모습과 바이오 스피어2 안의
대원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보여주었던 행동이 다르지 않다.
아주 오래전 남극기지에서의 폭행을 다루었던 기사가 떠오른다. 인간이 나약하고, 어쩌면 악마와 같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될때 나타나는 현상들,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자신에게 벗어남으로써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빅터 프랭클이 책을 마치며 정리했던 말과 다르지 않은것 같다.
아뿔싸 ! 병원에서 생기를 잃어버리고 기계적으로 읽어나갈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와서야 !
요즘들어 -내 자신을 보며 - 인간이란 존재는 참 복잡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그보다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존재가 아닐까 ?
대부분의 사람은 악으로 기울어지기에 성악설을 지지하게 되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독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강제 수용소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것이 입증된다면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기록해 놓을
책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본문 10쪽.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 -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10쪽.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본문183~184쪽.
프로이트는 고통을 주는 혼란의 원인을 서로 모순되는 무의식적 동기에서 비롯된 불안에서 찾았다.ㄴnoogenic neuroses 은 병의 원인을 심리적인 것에 두지 않고 인간 실존의 정신론적 차원에 두고 있다.
반면에 프랭클은 신경질환을 여러 형태로 분류한 다음, 그 중에서 noogenic neuroses와 같은 몇 가지는 그 원인이
환자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가 성적인 욕구불만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에 프랭클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늘날 유럽은 프로이트의 정신의학에서 크게 방향을 전환해 실존적 분석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로고테라피 학파는 바로 이런 추세와 연관이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거부하지 않고, 그의 업적
위에 기꺼이 그 자신의 것을 쌓아올리는 것. 자기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실존적 치료법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고, 그들과 유대를 맺으며 공동보조를 해나가는 것.
이런 관대함이 프랭클 이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본문 17쪽, 이시형
이것이 인간 고유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로고테라피 용어이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 본문 130쪽.
평범하고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본문 131쪽.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ㄴ 뇌간과 맞물려 생각해보자. 자신을 스스로 퇴화시키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관여하고 있지 않을까 ?
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병리적 상처를 정신요법이나 정신 위생학적 방법을 이요해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
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수감자들 중에 몇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그런 목표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으로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어야 할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미래 - 그 자신의 미래 - 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인간의 정신상태-용기와 희망 혹은 그것의 상실-와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의 갑작스런 상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내 친구의 죽음을
초래했던 결정적인 요인은 기대했던 해방의 날이 오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몹시 절망했으며,
잠재해 있던 발진티푸스 균에 대항하던 그의 저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그의 믿음과 살고자
하는 의지는 마비되었고, 그의 몸은 병마의 희생양이 되었다.
수용소 주치의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인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 동안 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조건이나
식량사정의 악화,기후의 변화,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본문 131~136쪽.
살아야 할 이유
니체가 말했다.
"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슬프도다 !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이여 !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이런 사람에게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 137~138쪽.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본문 181쪽.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특성을 나는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이라고 이름지었다. 이 말은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 혹은 그 어떤 사람을 지향하거나 그쪽으로 주의를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성취해야 할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대면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본문183~184쪽.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동시에 로고테라피는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 형성과 송환기재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집중현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물론 이런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게 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로고스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로고테라피' 혹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빈 제3정신의학파'로 불리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내가 로고테라피를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의 원칙이나, 아드리안 학파에서 '우월하려는 욕구'로 불리는 권력에의
추구와 대비시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인간을 그저 충동과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쾌락을 얻거나 서로 갈등하고 있는 이드와 자아,
초자아를 절충시키거나 혹은 사회와 환경에 그저 순응하고 적응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주된 관심사가 어떤 의미를 성취하는 데 있다고 보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분석과
구별된다. -본문 167~174쪽.
정신의 역동성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
되어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그렇게해야만 그 동안 숨어
있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 본문 174~176쪽.
중요한 것은 포괄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실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 따라서 각 개인에게 부과된 임무는 거기에 부가되어 찾아오는 특정한 기회만큼이나 유일한
것이다. -본문 181쪽.
인생을 두번재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로고테라피 행동강령 , 본문 182쪽.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다갈 수 있다.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은 어떤 것 -선이나 진리,아름다움을-체험하는 것,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거나
(마지막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즉 그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 184쪽.
사랑의 의미
사랑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 가장 깊은 곳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사랑으로 인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되어야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함으로써 이런 잠재능력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본문 185쪽.
시련의 의미
아무리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상황을 더 이상 바꿀 수
없을 때에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인간의 주된 관심이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데에 있다는
것은 로고테라피의 기본 신조 중의 하나이이다. 자기 시련이 어떤 의미를 갖는 상황에서 인간이 기꺼이 그 시련을
견디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본문 186~187쪽.
인간은 여러 개의 사물 속에 섞여 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사물들은 각자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본문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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