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제국

취미-독서 2009. 11. 5. 21:29 |



영화에서 외계인이 인간의 흉곽을 쪼개고 나왔을 때, 
그것은 어느 것보다도 똑똑한 생명체인 척하는 인간들의 위선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인간을 쪼개고 나온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 그 자체이고, 그 사실이 바로 우리를 전율케 한다.

기생충은 인간을 단지 먹이로나 운송 수단으로 차갑게 바라본다.


가뭄에 콩나듯 눈팅 하러가는 DC 동물 갤러리에 갑자기 [기생충 갤러리]가 생겼다.
강아지와 고양이 갤러리 보라가는 곳에 난데없이 , 게다가 [기생충 갤러리] 라니 !!!

(참고로 DC에서 고양이는 또자마님,돌만이,모모,고대리 / 멍멍이는 마루와 콩떡이의 오랜 팬이다)


20년 전, 시골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물뱀 패밀리가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의 충격으로 뱀 뿐아니라 꿈틀거리는 모든 생물을 무서워하게 됐다.


이런 내가 [기생충 갤러리] 게시물을 클릭하는 건 엄청난 모험이었다.
심호흡을 하고(DC 인사이드 가서 동물 갤러리 -> 기생충 갤러리에 들어가면 게시글들 포스가 감히 클릭하기
힘들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클릭을 했으나 연가시,고래회충을 보고 말았다. 

이 책을 보기전까지 충격이 남아있었다.
참고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더이상 기생충에 대한 공포는 거의 사라졌다. 
여전히 그 모습이 징그럽기는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어갈 무렵 한 기생충학자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기생충의 너무 선정적인 외형때문에 사람들이 멀어지고 인정을 못 받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기생충의 그 선정적일 정도로 징그러운 외형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독히도 최적화를 한 결과이다.
숙주의 몸에 기생하기 위한 최적의 기관만 남기고 쓸데없는건 다 때어버린 최적화된 몸인 것이다.

중반부가 넘어가면 감탄이 나온다.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기생충만 제대로 연구해도
획기적인 의학 기술은 물론이고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징그럽고 하등 쓸모없이 보이는 기생충들은 인간의,동물의 신체 언어를 이해하고 이용하기까지 한다.

숙주의 유전자를 조작하기 까지 하는 기생충은 그간 너무 과소평가 받아왔다.

DC의 <기생충 갤러리> 덕에 이 책을 알게 되어 새로운 세계를 보았고, 책 한권으로
인해 내 트라우마까지 치유되었다. 애정을 갖게 되면, 비로소 보인다는 어느 싯구절이 떠오른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1) 기생충 연구가 학문으로 인정받기 까지의 과정

 2) 기생충과 숙주 면역계의 끊이지 않는 전쟁 (기생충 승)

 3) 기생충이 숙주의 몸에 침투하여 적응하고, 숙주를 조정하는 과정

 4) 기생충과 인간의 공존



아무 쓸모없는 인간에게 "이 기생충 같은 놈아" 란 말은 이제 쓰면 안되겠다.
기생충, 정말 치열하게 산다. 숙주 몸에 들어가서 기생하는게 쉬운게 아니더라.

앞으로 " 이 기생충보다 못한 놈아 " 요래야 겠다.


기생충은 살아남기 위해 숙주가 가진 독특한 면역계에 맞춰 싸워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살기 위해 면역계를 피해 다니고, 혼동시키고, 조종한다.
우리 몸에 기생충이 들어오면 면역계가 경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면역계의 신호 체계를 혼란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많이 있는 반면, 기생충에 대한 백신은 없다.


기생충이 숙주 몸에 들어가면 바로 면역계의 공격을 받아 처음엔 기생충수가 바닥을 치지만 이놈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속담을 알고 있다. 면역계와 싸워가며 적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곤, 
재빨리 거기에 맞는 대응 전략을 구사한다.


슬램덩크를 보면 정대만 패거리의 습격을 받아 서태웅을 비롯해 막강한 우리 강백호도 죽사발이 되버린다.

철이라는 강적에 의해 강백호도 어쩔수 없는가...하고 나도 고릴라(채치수)가 빨리 와주길 바라며
차마 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 일순간 상황은 역전이 되버린다.

강백호가 철이에게 얻어터지면서 수법을 간파하고 나선, 죽사발을 만들어버린다.
이 책과는 상관없지만 진짜, 슬램덩크같이 희노애락을 다 맛보게한 명작이 또 나올지 모르겠다.
교과서보다 슬램덩크를 통해 배운게 더 많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자기가 이기고 있는줄 아는 면역계는 갑자기 모습을 바꿔버린
기생충에 역공을 당하고 당황하며 새로운 무기를 준비한다.
면역계가 새로운 총알을 장전하는 그 찰나를 노리고 기생충은 미친듯이 번식해버린다.


이 부분을 읽다보니 매트릭스 3의 이장면이 바로 떠올랐다.




저렇게 미친듯이 번식해서 달려드는 기생충을 공격하고, 또 다시 번식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불쌍한 면역계는 과도하게 흥분해서 자신을 공격해 죽고 만다. 

어떤 기생충은 면역계에 스파이로 숨어들어가 옆에서 같이 싸우는 척하며 면역계를 변화시켜버린다.
일단 면역계를 정복하고 나선 마음껏 숙주에 기생하며 살아가지만 놀랍게도 스스로 규칙을 세운다.
무리하게 증식해서 숙주를 죽이면 자신들또한 죽게 되니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하고 숙주와 공생하는
방법을 찾는다. (어디든 예외는 있다. 극소수의 기생충은 숙주도 죽여버린다)

게다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숙주를 보호하기도 한다. 헉...-_-;

기생충들이 숙주의 언어를(DNA,면역체계 등)를 이해하고 적응하며 진화하고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


척추동물만이(인간포함) 이런 면역계를 갖고 있다. 무척추동물들은 독자적인 면역계가 없으니
저마다 강력한 방어 방법을 갖췄으나 기생충들은 이를 비웃듯 숙주를 아예 바보로 만들어버리고 조종한다.

몇가지 사례를 보면,


기생벌의 유충들은 배추 벌레의 몸 속에서 자라며 숙주인 배추벌레를 마취시켜 놓고 내장을 다 먹어버린다.
그러곤 배를 뚫고 밖으로 나오는데 배추벌레는 죽기 직전의 치명상을 입고 마취에서 깨어난다.
그리곤 기생벌 번데기 위해 그물을 짜서 보호막을 만들고 그 위에 몸을 말고 누워서 다른 기생충들을 막는
보디가드 역할을 한다. 이때 침입자가 나오면 실제 공격을 하며 기생벌 유충을 보호한다.
기생벌이 번데기에서 안전하게 나오면 그제서야 임무를 마치고 누운채 죽어간다. 

촌충이 큰가시고기의 몸에서 새로 옮겨가는 과정을 또 보면 더 기가막힌다.
촌충이 세 개의 가시를 가진 큰가시고기의 몸 속을 가득 채우고선 고기가 섭취한 양분을 모두 빨아 먹어버리면
불쌍한 큰가시고기는 배고픔에 시달려 위험을 무릎쓰고 먹이를 사냥하게 된다.눈에 뵈는게 없는거다.
곁에 새가 있어도 도망가지 않게 되어 큰가시고기는 새에 잡아 먹히게 되고 촌충은 목적대로 새로운 숙주인
새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책에는 사레가 더 나오는데 자신들을 위해 숙주를 화학적으로 거세시켜버리기도 한다.


인간만이 우월하다 믿는 인류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러다보니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무시당하고, 이단자로 낙인찍혀 학계에서 배척당했다.
나중에야 공로를 인정받고 자신들을 쫓아낸 자들이 상을 주자 씁쓸해하는 기생충학자가 나온다.

우리 인간들은 뇌의 신비를 다 풀지 못했고 뇌내 신경전달 물질에 대해 다 알지도 못한다.
기생충들은 뇌에 자리잡고 숙주를 마음대로 조정한다. 그들은 숙주의(인간이든 동물이든)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기생충들의 놀라운 능력이 이제서야 밝혀지고 있다.
모든 게 밝혀지면 인간들의 교만을 깨닫게 될 날이 올까 ?

기생충들은 심지어 숙주를 죽이지 않고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생충은 첨예한 두 종간의 경쟁을 무디게 하여 한 종류의 생물이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종의 생물을
내쫓지 못하게 하는데, 그럼으로써 두 종의 동물들이 함께 잘 지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슴에 기생하는 한 선충은 사슴에게는 전혀 해를 입히지 않는데, 말코 손 바닥 사슴으로 옮겨가면
바로 척추로 파고 들어가 마비시켜 술에 취한 것처럼 휘청거리며 다니다가 죽게 만든다.
그런 기생충이 없다면, 사슴은 말코 손바닥 사슴과 경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래퍼티 같은 생물학자들은 기생충이 숙주를 조절하는 방식에 따라 자연계의 균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기생충들이 믿을 수 없도록 선정적이라는 사실에 짜증이 납니다.
 바로 그런 점이 기생충학이 하나의 학문이라는 권위에 상처를 입히고 있지요.
 그런 이유때문에 사람들이 기생충학과 멀어집니다.  - 호버그(기생충학자)

만약 대운하가 건설된다면, 땅이 물속에 잠기게 되어 흡충을 옮기는 달팽이들이 거기에 집을 짓게 되고
새로운 분선충이 유행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이 책을 통해 배운바에 의하면)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데 고작 분선충뿐일까 ? 생태계가 교란되면 변종 기생충이 나오지말라는
법도 없다. 기생충은 늘 적응하고, 진화하며 기생해왔다.

쥐로 들끓고 있는 청계천의 실상을 다룬 기사를 봤다(주간 경제 잡지)
쥐로 인한 바이러스 뿐 아니라 그야말로 기생충들의 인큐베이터가 따로 없다.

시민들이 발을 담그고 쥐들이 쉬없이 들락거리며 병균을 퍼뜨리는 그 위를 다닌다.

대운하를 우리나라를 반으로 쪼개버리는 대재앙이 생기면, 기생충학자들의 성지가 되진 않을까 걱정된다.


후반부엔 인간과 기생충의 공존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거기엔 한국의 예도 나온다.
나도 장염으로 지독하게 고생한 경험이 있다. 흥미롭게도 장염은 지구상의 가난한 지역에서는
거의 보고되지 않는 병이다.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생기는 병이란 것이다.


장염의 원인이 장내 기생충을 박멸시켰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미국의 경우 장염은 도시의 부유한 사람들에게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다.
약을 사먹고 장내 기생충을 제거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동물들도 기생충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장질환에 걸리기 시작했다.

인간이 이런 장질환으로 부터 보호받았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면역계와 기생충 간의 상호작용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약을 살 수 있게 되자 수억의 인구들이
갑자기 자신의 기생충을 잃어버렸고, 기생충의 진정효과가 없어지자 적이 없어진 면역계가
사람들을 공격하게 된 것이라는 분석은 설득력 있어보인다.

이 책 덕분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1997년 실험 결과는 저자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다.
장 질환환자 7명에게 기생충 알약을 먹였더니 7명 중 6명의 장 질환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기생충이 없는 삶은 알레르기 같은 다른 면역 질환의 발생에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내가 이해한 바는 기생충과 면역계가 싸우는 팽팽한 긴장상태가 인간의 건강엔 이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적이 없어진 면역계가 사람의 몸을 공격하고 있다.


면역계가 약한 자극에도 쉽게 과도한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다.
어느정도 자극이 있어야 오히려 더 건강해진다.

견제 받지 않으면 몸이든, 사회 조직이든 결국 망가지나보다.



기생충이 치료제가 되기도 할 것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수긍을 한다.


책의 후반부엔 기생충은 생태계에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아직도 학자들은 자연계의
기생충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한다.


기생충에 의한 안전화 이론을 뒷받침할 근거를 충분히 모으기 위해 코스타리카 섬 구석을 뒤지고 다질
기생충학자들의 뒷모습이 자연스레 연상이 되었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 전문지식도 등장하지만, 마치 한편의 모험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책이 끝나가는게 아쉬워 다음 장 넘기기가 힘들었다.

 지구의 입장에선 인간은 기생충이다. 기생충들은 숙주를 변화시키고 적응을 하며,
 필수불가결한 손상만을 입힌다. 숙주가 심하게 손상되면 결국 기생충 스스로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진화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기생충도 숙주를 파괴하지는 않고 공존한다. 인간만이 자신의 터전, 숙주를 파괴하며 살고 있다.

끝이 뻔한 게임을 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기생충보다 더 징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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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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