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적인 느낌으로 그쳤던 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재성을

시원하게 말로 풀어줘서 좋았다. 정보량이라는 의미를 찾아

가다 보니 미야자키 감독을 재발견하게 된다.


현실이 아닌 뇌의 관점에서 최고의 사실주의를 실현하고 있는게

미야자키 감독이었다. 


글이든 뭐든 창작의 고통은 뇌속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발견하는

것에 있다.


인간의 뇌는 처리할게 많다보니 사물을 대강 받아들인다.

라고 언젠가 읽었다. 그러다보니 특징만을 잡아 저장하는데

미야자키는 그 뇌가 받아들이는 특징을 애니로 재현해낸다.


언제인지도 모를 과거에 그의 애니메이션 속 과장되게 크게 

그려진 늑대의 품안에 나도 파고들어 부비부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생각만으로 따스함이 느껴졌었다.


같이 사는 작은 개님의 가슴팍에 부비부비 하는건 대리만족

인가 보다. 어찌나 좋은지 질리지도 않는다.


거대한 고양이, 멍멍이 ,토토로의 풍성한 털 속에 파묻히는걸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


해외 사이트에서 고양이를 집채 만하게 합성한 후 주인이

그 뒤에 기대 신문을 보던 이미지가 떠오른다.


왜 커뮤니티에선 잊혀질만하면 집안에 사자를 풀어놓고 

기르던 어느 배우의 사진이 계속 나올까 ? 

자신보다 큰 사자의 배 위에 기대 책을 보던 그 사진.


모노노케 히메에서 들개신 모로가 장면에 따라 크기가 계속

달라지는 그 장면에 미야자키의 천재성이 숨어있었다.


뇌는 커다란 고양이, 커다란 개를 기분좋게 받아들인다.


토토로의 성공은 그렇다. 토토로의 그 부비부비하고 싶은 배다.


정보량



'정보량'이라는 말은 어떤 뜻으로 쓰이는 거죠 ?


스즈키 프로듀서에게 이렇게 묻자 "그림의 섬세함을 말합니다."

라는 평범한 대답이 돌아왔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는 계속

설명해주었다.


"지브리 영화는 정보량이 많아서 한 번만 보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관에 몇 번이고 보러 오고, 재방송을 여러

번 해도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지요. "


...중략


"정보량을 늘리는 것은 힘든 일이에요. 옛날 애니메이션에 비해

요즘 애니메이션은 하나같이 정보량이 많지만 제작비는 오히려

옛날보다 줄었으니까요 "


스즈키 프로듀서는 그렇게 개탄했다. 그러고는 그런 현상을 

초래한 사람은 다름 아닌 미야자키 감독이라고 덧붙였다.[각주:1]



애니메이션 그림의 정보량에 관해 내게 가장 명쾌한 정의를 

가르쳐 준 사람은 이시이 도모히코씨다. 그는 나보다 먼저 스튜

디오 지브리에서 스즈키 프로듀서의  수습 프로듀서로 일했고,

지금은 프로덕션 IG라는 회사에서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그림의 정보량이란 선의 수입니다. 선의 수가

얼마나 많은 가로 애니메이션의 정보량이 결정됩니다. "


...


"지브리의 작품이 성공한 이유는 정보량이 많기 때문이라고 

애니업계에서는 해석하고 있고,그래서 모두들 지브리처럼 선의

수가 많은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얘기가 되었지만 , 그렇다고 해서 지브리처럼 잘 팔리지는 않기

때문에 제작비만 많이 들고 힘든 상황이 되고 말았지요."


스즈키 프로듀서도 비슷한 말을 하곤 한다. 아무래도 애니 업계

에서는 그림의 정보량을 앞 다투어 늘리려는 소모전이 펼쳐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정보량을 늘리고 싶다면 왜 모두 실사를 만들지 않는

걸까 하고 다시 이시이 프로듀서에게 질문을 던졌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의아한 말을 했다.


"원래 아이들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보량이 적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지요."


"네? 정보량이 적은 편이 좋은 건가요 ?"


"실사는 아이들에게 정보량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잘 이해하지

못해요.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그림이 이해하기 더 쉬운 법이죠: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본래 애니메이션은 실사보다 정보량이

적다는 점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한다. 그런데 정보량이 적어야

할 애니메이션들이 요즘은 정보량을 늘리려는 경쟁을 벌이고 있

다는 말인가 ? 그렇다. 나는 이시이 프로듀서에게 확인해봤다.


"바로 그겁니다. 정보량이 늘어남으로써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

들도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반대로 어린아이들은

요즘 애니메이션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어졌지요 "


"뭔가 모순된 얘기네요."


"맞아요. 한마디로 모순이지요."[각주:2]



주관적인 정보량과 객관적인 정보량


'애니메이션의 정보량'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 컴퓨터 영상

데이터의 크기나 애니메이션의 선의 숫자가 아닌 정보량을 세는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의

뇌가 인식하고 있는 정보량이라는 얘기가 된다.

즉, 정보량에는 두 종류가 있다.


나는 이것을 '주관적인 정보량'과 '객관적인 정보량'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전자는 인간의 뇌가 인식하고 있는 정보의 양

이고,후자는 애니메이션의 선의 숫자에서 컴퓨터의 화소 수까지

객관적인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다.


...


"미야자키 감독은 말야,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크게 그려.

미야자키 감독은 비행기를 좋아하니까 그가 그리는 비행기는 현

실의 비행기보다 크지: 라고 스즈키 프로듀서는 말했다.


...


스즈키 프로듀서는 미야자기 감독이 보기 좋은 그림을 그리는

데 천재라고 말했다. 과장해서 억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뇌에 가장 자연스러운 크기로 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다.



...


즉, 미야자키 감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작품들이 정

확히 인간의 뇌와 시각 구조가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그려져

있어 묘사가 뇌에 기분 좋게 전달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스즈키 프로듀서의 설명이다.[각주:3]



그렇다면 인간의 뇌는 콘텐츠의 정보를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바꾸어 이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콘텐츠로서의 정보량과 뇌가 인식할 때의 정보량은

원래 다르다. 이 뇌가 인식하는 정보량이 바로 주관적인 정보량

이다. 콘텐츠가 현실적이라고 해서 뇌가 인식하는 주관적인

정보량이 많다고만은 할 수 없다.





  1. <콘텐츠의 비밀> 가와카미 노부오,39~40쪽 [본문으로]
  2. <콘텐츠의 비밀> 가와카미 노부오,43~44쪽 [본문으로]
  3. <콘텐츠의 비밀> 가와카미 노부오,46~49쪽. [본문으로]

'나만의 사전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능  (0) 2014.05.03
조직인간  (0) 2014.02.12
Posted by 시냅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