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늙어갈것인가

공책 2016. 11. 16. 20:11 |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나게 되니 무엇에 시간을 쓰며 살아야 할 것인가하는 고민이 나를 사로잡는다.


직장인으로 살때는 그저 일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배부른 고민이다.


나이가 드니 주변 사람들이 아프고 죽는다. 그리고 그 텀이 갈수록 짧아져서 이제는 전화통화 하기가 무섭다.

누군가 아프고 , 누군가 죽어가고 , 누군가 죽는다.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와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3년여의 시간들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차단하나보다.


그런데 다시금 이모의 투병으로 인해 암병동을 찾게 되니 잊고 있었던 그 시간들, 

병동의 무거운 공기가 가슴을 찌른다.


다시금 사는게 참 부질없고 별볼일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알아왔던 것들이 지금의 세상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자본주의 세상이 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 폭망을 지켜보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도 된다.


그런데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생겼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무심히 여중생들을 봤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너무나 소중해보이고 뜬금없이 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느정도 산 

나는 희생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괜히 교복입은 학생들을 보면 울컥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너무나 소중하게 보인다.

때가 탄 어른이 되버린 나와는 너무도 다른 존재로 보인다.


생전 처음 느끼는 이런게 바로 '나이듦' 이란 것인가 ?


앞으로 자식을 낳고 살 가능성이 없지만 다른 아이들이 소중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모가 돌아가시면 남게될 두 명의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친구의 아이도 있다.


이 아이들하고 종종 시간을 보내게되니 어른으로서 뭔가 해주고 싶다.

말 한마디 해도 따숩게 하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다. 쪽팔린 어른이 되기 싫다.


특이 고2녀석은 대안학교에 들어가더니 몰라보게 커버렸다.


밤늦도록 대화를 하고 물음에 답하다보면 나도 나름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온것 같은데

어른으로서의 뚜렷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순간들에 직면한다.


모든걸 흡수하고 있는 녀석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답을 내놓고 싶다.


어쨌든, 이런 이유들로 다시금 배우며 살고 싶다는 의지가 활활 불타오른다.


그래서 다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독서 노트를 쓰고 , 이전의 기록들을 보고있다.



다시 무언가 배우고 , 노력하고 , 애쓰는 시간들로 남은 인생을 채우려하니 몸에 생기가 넘친다.


오랜만에 즐겁다는 생각도 든다.


내 하루가 다시 새로운 경험과, 도전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다시 펜을 잡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보고 있다.



- 내 생각을 자유자재로 그려보고 싶다. 기본 드로잉 실력을 갈고닦아서 자유롭게 그리고 싶다.


- 학창시절 미쳐있었던 기타를 다시 치고 싶다. 그냥 치는거 말고 아주 잘 연주하고 싶다.


- 역사와 인문학적 지식들에 뼈대를 더해서 아이들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 다시 독서를 하고 , 내가 정리한 것들을 잘 소화해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 작곡을 배우고 싶다.


-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도 재미있는건 무의식적으로 무언가 쌩쌩 돌아가고 있다.


배우고 싶은 것들에 무작정 시간을 쏟을 수 있는게 아니다보니 효율적이고 의식적으로 노력과 시간을 투입

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금 몰입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런 내 스스로를 개선해나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른이 되고 , 잘 늙어가는 게 무엇인지 자꾸 스스로에게 묻는다. 


일단 열심히 책을 찾아보고 잘 늙은것 같아 보이는 이들의 말을 들어본다.



우리나라 교육에 잘 적응하고 살아온 결과가 이 지랄이다. 


나만 허당인가.음. 그럴수도 있겠다.


그래도 고민하며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서 배우고, 강의도 듣고 , 아이들하고 피드백도 해보며

살아볼 생각을 해보니 생기가 돈다.



그러고보면 정말 웃긴다. 직장인 역할로 살때는 자유롭게 어느정도 나태한 시간을 원했는데,

정작 그렇게 되버리니 나태하게 살지 않으려고 고민을 한다.


지금의 나는 하루 종일 생각을 하고 , 읽고 , 종이에 끄적거리고 , 음악을 듣고 , 개님이랑

산책하며 계절을 즐기고 , 원두 향을 음미하며 고상한 척도 하고 하루를 제법 알차게 보낸다.


다시 학생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뭔가 긴장감이 깃드니 하루가 다시 길게 느껴진다.


눈깜짝하면 지나가버리던 허망한 하루의 속도가 이제야 늦춰지고 있다.



 

'공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건을 치우다 , 요즘의 즐거움  (0) 2016.11.20
11월12일 광화문 집회 참석 후기  (0) 2016.11.13
완벽한 일요일 오전  (0) 2016.10.23
Posted by 시냅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