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일요일 오전

공책 2016. 10. 23. 10:33 |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내려마신 후 집안에 커피향을 퍼뜨린다.


창가에 살고 있는 화분들 잎사귀에 분무기로 촉촉히 물을 뿌려준다.

그리고 잠깐 아주 만족스게 쳐다보고 소파에 앉아 청소할 구상을 한다.


뜨끈한 물로 목욕을 먼저 하고 솔로 화장식 구석구석을 닦아준다.

군에서 배운대로 변기와 화장실 바닥을 열심히 치약 미싱을 한다.


마무리는 역시 락스로 촤아악.


상쾌한 치약향과 락스향이 화장실 가득하다.



만족스러운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소파를 보니 개님은 편안히 라디오를 들으며 쉬고 있다.


완벽한 일요일 오전이다.




그러고보면 어렸을때 우리집 화장실은 늘 깨끗하고 락스향이 났다.


부지런하고 깔끔했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덕에 나는 청소를 하는걸 좋아하나보다.


너무도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에 저릿함이 스며든다. 나도 모르게.


무념무상으로 화장실에 락스를 뿌리고 있으면 엄마 생각이 스며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냄새 나는 나무들을 보면 엄마 생각이 스며든다.


참 이 뭣같은 세상 씩씩하게 혼자 잘 살아내고 있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보면 그냥

자연스레 엄마가 생각이 난다.


생각을 놔버리고 그저 몸이 가는대로 움직이면 왜 엄마 생각이 날까.


가시기전 개나리 보러 가자던 엄마 생각이 불현듯 나서 얼굴이 뜨겁다.


암에 걸려 반쪽이 되버린 이모를 보고 와서 더 그런가보다.


나이를 먹으니 주변 사람이 자꾸 아프다.


얼마 되지도 않는 가까운 사람들, 그 선하고 열심히만 살아온 사람들의 아픔을 보면 사는게 뭔지 모르겠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어린시절을 추억하는 어느 여가수의 팝송이 흘러나온다.


내가 이런 말을 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가 좋았지.



늦은 후회로 괴롭기만 했던 시간마저 다 지나고나니 아픔이 일상처럼 편안하게 찾아온다.


  

Posted by 시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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