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페리아 거치대를 만들고 남은 카본 시트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쓸데도 없는데 나눠줄까 ? 거치대 만들자고 카본 시트지 살려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잖아.
남은 카본 시트지는 거치대 7대 정도 만들분량.  5SET으로 하면 되겠구나. 

과연 신청하는 분들이 있을까 ?  의심이 살짝 들었지만 뭐 신청하는 분들이 없으면 나중에 쓸일이 생기겠지.
본문에 급 이벤트를 한다고 끼워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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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5SET  모두 신청되었다. 근데 막상 보낼려고 하니 살짝 민망하다.
물건 주문해놓고 하루만 늦어도 안달이 나는 세상에 일반우편이라니. -_-;

그렇다고 택배로 보내기도 그렇고...우표를 2장 붙이면 더 빨리가지 않을까 하는 초딩틱한 생각으로 타협을 했다.

점심을 먹고 편지 보내기 위해 시트지를 자르고 우표와 풀을 찾았다.
 
세상에. 편지봉투와 풀이라니. 이게 얼마만이야.





우표,

'풀'이라는 단어를 발음해보고, 적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난다.

'풀'이라니...우표 뒷면에 살짝 혀를 갖다대 맛을 봤다.-_-; 왠지 모르게 정겹고 기분이 좋다.

 



군포,서울,광주,수원. 누군지 모를 5분에게 보낼 준비가 다 끝났다.
흠..근데 우리 동네에 우체통이 있었던가 @@


세상에 매일 지나가는 곳인데 이제서야 우체통이 보인다. 너 거기 있었구나.




늘 그곳에 있던 우체통. 있는지도 몰랐다. 오늘에서야 봤다.

이게 대체 몇년만이야.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기분이라니.

편지를 보내고 돌아오는길. '편지'에 이끌려 옛 기억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난다.
내가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고, 보냈던 적이 언제였더라..

아,..그래 군대였지.


남들은 군대에서 애인들의 편지를 받을때 내게 오던 편지 주소지는 '군부대'와 '교도소'였다.

한명은 훈련소 동기, 한명은 여 교도수.

2005년 제대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그녀석과 그녀는 지금쯤 잘 살고 있을까 ? 궁금해진다.



+ 그녀석은 레전드리 고문관.

  24살에 입대한 군대. 논산 훈련소. 동생들과 같이 훈련소 생활을 시작하니 다들 형이라고 불러주며 잘 지냈지만
  은근히 나이값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훈련 담당하던 간부는 나하고 동갑으로 보인다.(알고보니 나보다 1살 밑)

  게다가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훈련소 들어갔더니 조교중 짬이 제일 되보이는 넘이 자꾸 나를 쳐다본다.
  입소하고 삼일이 지난 밤. 아무도 잠을 못이룬다. 그런데 그 조교가 음료수와 과자가 담긴 봉투를 들고와서 나를 부른다.

  헉 -_-; 고등학교 동창이였다. 학창시절 내가 어울리던 그룹이 아니였던지라--; 몇 마디 이야기 나눠본적도
  었던 친구였는데...그래서인지 난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먼저 찾아와주더니 음료수를 건넨다.

  잠못자던 훈련소 동기들은 자기들 앞에서 콜라를 마시던 나를 보고 부러워 미칠려고 한다. 
 
  동창까지 지켜보니 A급 훈련병이 되야 한다는 압박감은 더 심했다. 쪽팔리잖아.

  그런데 우리 소대에는 레전드리급 고문관이 있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이렇게 어리버리한 놈은 처음봤다.
  한명이 실수하면 전체가 다 피해를 봤던지라 동기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조교들은 거의 잡아먹을려고 한다.

  아직 구타가 있던 시절이라 온갖 모욕에도 모잘라 훈련병에게 날라차기를 하던 시절.

  이녀석은 그야말로 먹잇감. 녀석은 갈수록 더 움츠러들었다. 
  자리배치가 변경되면서 그녀석이 내 옆자리로 왔다.헉.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까지 녀석은 늘 도움을 필요로 했다. 
  내 몸하나 간수하기도 피곤했으니 짜증이 났다. 그냥 냅두면 전체가 다 욕먹으니 아침에 일어나면 침구 각을 
  잡아주고 -_-; 훈련때는 녀석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줘야 했다. 잔뜩 얼어있으니 조교말이 들어올리가 없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미운정이 드니 녀석이 내게 속마음을 말하기 시작한다.

  죽고 싶단다..헉. 녀석은 진심이였다. 자기 때문에 전체가 고생을 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감과 기본적으로 우울증
  증세가 있었던지라 문제가 심각했다. 

  그때부터 내 훈련병 생활목표는 녀석이 자살하지 않게끔 옆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내가 나이가 많았으니 녀석도 형이라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다. 
  뭐 내가 그리 착한놈은 못되지만 사람이 죽고 싶다는데 어찌 그냥 두랴.

  총검술과 제식 훈련 훈련때마다 도저히 따라가질 못하던 녀석. 같이 열외되서 알려주고, 자유시간이면 복도에
  나가서 어떻게든 흉내라도 낼 수 있게 해줄려고 했다. 

  하루하루 빡세게 보내던 중. 긴장하면 손을 부들부들 떨던 녀석은 수류탄 교장과 사격장에서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그때의 분위기란..후.

  동기들 달래고 녀석 달래느라 바빴지. 내가 그네들과 동갑이었다면 나도 같이 욕하고 나무랬을 것 같다.
  한 살이라도 더 먹어서 갔으니 가능했겠지.

  아무리 힘들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계급도 없이 번호로 불리는 훈련병 생활이 끝나고 이등병 계급장을 달았다.

 


 
 강원도로 자대를 배치받고(이번 월북 사건으로 사단장과 일반 사병까지 징계받은 바로 그 22사단) 녀석은 경기도
 어딘가로 그렇게 헤어졌다.

 일병을 달고 유격훈련을 다녀와서 '샘터'라는 잡지에 글을 써서 보내봤다. 유격을 주제로.
 샘터, 좋은 생각 등의 잡지는 전국의 군인들에게 보급이 된다. 그래서 샘터,좋은 생각에 글을 보냈고 2번 실렸다.
 
 그런데 녀석이 샘터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곤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내 자대주소를 알아내 편지를 보내왔다. 

 헉.잊고 있었는데.. 녀석은 역시 그곳에서도 고문관으로 힘들게 생활했지만 훈련병 시절의 그 무수한 갈굼을 
 이겨냈던지라 더이상 자살하겠다는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후로 꾸준히 편지를 보내왔고 나는 제대를 했다.

 벤쳐 사업가란 타이틀을 달고 잘난 줄 알고 착각하다 된통 깨지고, 인간관계 마저 파탄난 상태로 늦은나이에 입대한
 나는 어쩌면 녀석 덕택에 그 시간을 버텨냈는지 모르겠다. 

  


+ 그녀는 교도수

  '샘터'에서 나란 놈을 알고 편지를 보내온건 훈련소 동기만이 아니였다.
  잡지에 글이 실린 이후 날라온 편지의 주소지는 교도소였다.

  그것도 여 교도수.

  '샘터'가 교도소에도 보급이 되었나보다. 첫 편지부터 자길 누나라고 생각해달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자기가 읽었던 책, 잡지에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 등등. 편지 어디에도 어두운 구석은 없었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편지를 했고 나도 나름 재미있게 답장을 보냈다. 자대에서는 면회라도 오면 어쩔려구 그러냐며
  난리였다. 사실 나도 궁금했다. 왜 그녀는 교도소에 갔을까.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상병이 꺾여갈 무렵.그녀의 편지가 오질 않았다.

  헉.출소했구나.

  면회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병장을 달고 말년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도 참 적잖이 수다스럽다. 편지 하나로 추억에 빠져버렸네.
시간이 지나니 힘들었던 기억들은 다 날라가고 추억만이 남았네.

나도 나이들어 가는구나.
 

Posted by 시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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