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책도 얇아서 단숨에 읽혀지는게 아까웠다. 터져나오는 생각들을

노트에 정리하다보니 본 책보다 두꺼워졌다. 


상상력과 영감,과거의 추억이 버무려져 튀겨지는 팝콘 같았다.

저자가 깔아놓은 멍석에서 즐겁게 놀았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콘텐츠를 이렇게 정의한다.


콘텐츠란 '양방향성이 없는 놀이'를 매체에 각인시킨 것이다.

  

콘텐츠란 '놀이'를 매체에 각인시킨 것이다.


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숨에 다 읽은 자만이 마지막 정의에

감탄을 할 것이다. 


일본 지브리 작품에 전세계 사람들이 동일한 감동을 느끼고,

가슴속 무언가 뜨거움을 느끼는 이 애니같은 일은 어떻게 가능

할까 ? 일본인들은 왜 이럴까 ?


같은 질문을 여러 저자들이 했다. 나는 어쩌다 그 책을 읽었을까.


저자가 마쓰오카 세이고의 강의를 듣거나 그의 책을 한번이라도

읽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의 문장에서 마쓰오카 세이고의 

그림자가 보인다. 


전세계인들이 지브리 애니에, 토토로에 여전히 감동하는 이유.

콘텐츠=작은 객관적 정보량으로 큰 주관적 정보량을 표현한 것.


마쓰오카 세이고는 놀이의 기원을 역사적 순간 어딘가부터 지독

하게 파고들어 파편화된 정보들 속에서 패턴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패턴 속에서 콘텐츠의 본질을 발굴해낸다.

정보의 역사를 채집 생활하던때부터 파고 드는 그의 지독함에

몸서리쳤던 악몽이 기억이 되살아난다. 


저자 가와카미 노부오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탭들에게서 콘텐츠의 비밀을 찾아냈다.


저자의 콘텐츠 정의에 나도 한 숟가락 얹는다.


콘텐츠란 소비하는 이들이 창작자가 깔아놓은 멍석위에서 

울고 웃고 감동하며 저마다의 삶을 투영해 한바탕 노는 

것이다. - 시냅스


쓰고 보니 좋은 콘텐츠의 정의에 가깝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세상살이에 지치고 때묻은 인간을 한 개인

으로 되돌려 놓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들 좋아하는거 같다.


인간으로 태어나 한 개인으로 죽는게 인생이라던가.


아..단순히 나만의 단어사전을 만들어가는 짧은 글이 너무

길어졌다. 저자의 탓이다.


콘텐츠의 비밀



1. 콘텐츠는 정보의 알맹이다.


'콘텐츠란 무엇일까 ?' 새삼스럽게 생각하면 매우 어려운 질문

이다. 콘텐츠는 Content라는 영어 단어에 s를 붙여 복수형으로

만들어 표기한 것이다. 한때 신문 등 대중매체에서 '콘텐츠'에

대응하는 말로 '정보의 내용'이나 '정보의 알맹이'를 사용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명확한 뜻을 알 수 없었다.


'정보의 알맹이'라고 표현하면 '알맹이가 들어가 있는 용기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 용기가 바로 매체(미디어)다.

즉,'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알맹이'가 콘텐츠라는 뜻이다.[각주:1]




2.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도 콘텐츠에 포함된다. 


한편,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뿐 아니라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면 어떨까 ? 인간이 콘텐츠를 즐길

때는 음악 그 자체나 소설 본문뿐 아니라 표지나 패키지의 재질

도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심지어는 그것이 콘텐츠의 인기나 매상을 좌우할 수도 있다.


즉,상업주의와 연결된 오늘날의 콘텐츠 산업에서 소비자가 인식

하는 콘텐츠에는 콘텐츠의 주변에 있는 것 모두가 포함된다.

따라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도 그 모든 것이 콘텐츠에 포함

된다고 생각해봐야 한다.[각주:2]




3. 콘텐츠란 현실의 모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2천여 년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인용하겠다.


서사시와 비극의 시,거기에 희극과 디티람보스의 시,아울로

스와 키타라 음악의 대부분,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재현'이라

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세 가지 점, 즉 

(1)다른 매체에 의해 (2)다른 대상을 (3) 다른 방법으로 재현

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 문장이 2천여 년 전에 쓰였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4. 왜 현실을 모방하는가 ?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인간이 콘텐츠를 만드는(재현하는) 이유

도 설명했다.


재현(모방)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 가운데 하나다. 인간

은 이처럼 본능적으로 재현을 즐기고 재현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그렇다.아리스토텔레스는 콘텐츠가 생긴 원인에 대해 '재현'은

인간의 본능이며,인간이 재현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분석

했다. 그리고 인간이 재현을 통해 처음으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특징이라고 했다.


이는 인간에게 있어서 원래 콘텐츠가 하던 역할에 대한 중요한

지적이다. 콘텐츠란 현실 세계의 모방이며,인간은 현실 세계의

시뮬레이션인 콘텐츠를 통해 뭔가를 배운다고 지적한 셈이다.


요컨대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현실 사회를 배우는 교재가

바로 콘텐츠라는 뜻이다. 이는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콘텐츠의

기원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으로도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설

이다. 현실 세계를 모방한 콘텐츠 만들기는 좋아하는 본능이

인류라는 종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이다.[각주:3]




5. 콘텐츠는 시뮬레이션


이제 서서히 콘텐츠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우선 '콘텐츠란 현실의 모방 = 시뮬레이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각주:4]





6. 콘텐츠의 본질에 도달하다.


※ 이 책의 저자는 짖굿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검색을 통해 혹은

즐겨찾기로 제 블로그에 찾아오는 분들이 저자의 콘텐츠 정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빅픽쳐를 계속 그리다 끝에

가서야 완성하는데 중간에 정보량이나 기타 다른 개념을 자신의

큰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책의 끝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제대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가 현실의 모방이라면,객관적인 정보량을 늘릴 경우 현실

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식하는

현실은 실제로는 주관적인 정보로 본 현실이다. 그러므로 객관

적인 정보량을 늘린다고 반드시 주관적인 정보도 늘어난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이 현시을 배우는 교재로서 현실을

대신하는 것이 콘텐츠라고 생각하면, 적은 객관적 정보로 많은

주관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콘텐츠라는 얘기가 아닐까 ?


객관적인 정보와 주관적인 정보라는 말을 사용한 나의 콘텐츠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작은 객관적 정보량으로 큰 주관적 정보량을 표현한 것.


현실보다 객관적인 정보가 부족한 진부한 현실을 보여 주고,

그 가운데 큰 사건을 가상적으로 체험시키거나 진기한 정보를

다루는 것이 콘텐츠다.


객관적 정보량 : 현실 > 콘텐츠

주관적 정보량 : 현실 < 콘텐츠


내가 찾아낸 결론은,콘텐츠가 현실의 모방이라면 현실 대신 

무엇을 제공하는가를 정보량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콘텐츠

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5]




7. 콘텐츠는 뇌 속 이미지의 재현이다.


인간은 현실 세계의 이미지를 뇌 속에 가지고 있다. 그것은 현실

세계의 정보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특징만을 유추하여

조합한 이미지다. 콘텐츠 창작가는 뇌 속에 있는 '세상의 특징'

을 찾아내 재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창작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창작의 고통이다. 고통 가운데 뇌에서 

발견한 '세상의 특징'이야말로 콘텐츠의 진리이자 신비가 아닐

까 ? 나아가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의 목표가 아닐까 ?


미야자키 감독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애니메이션이란 세상의

비밀을 엿보는 것" 이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 "바람이나 사람의

움직임,여러 가지 표정,몸의 근육의 움직임 등에 세상의 비밀이

숨어 있다"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세상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일은 뇌 속에 있는

'세상의 비밀'을 찾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하는 일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을 '콘텐츠'로 바꾸어도 같은 의미

가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즉,창작가의 사명이란 '세상의 비밀'을 찾아서 재현하는 일이다.[각주:6]




8. 콘텐츠의 정의에 도달하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나는 콘텐츠란 현실의 모방이며 시뮬레이션

이라고 정의했다. 마찬가지로 현실의 모방이자 시뮬레이션의 

예로 사자가 먹이를 찾아 노는 경향이 있음을 소개했다. 콘텐츠

와 놀이는 현실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오히려 놀이야말로 콘텐츠의 원형이 된다.


이 책에서는 여러 각도에서 콘텐츠를 정의했는데,마지막으로 

하나를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콘텐츠란 '양방향성이 없는 놀이'를 매체에 각인시킨 것이다.


컴퓨터의 등장에 의해 게임이나 웹서비스처럼 콘텐츠에 양방

향성을 추가할 수 있게 된 현재는 위의 정의를 더 간단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란 '놀이'를 매체에 각인시킨 것이다.[각주:7]





  1. <콘텐츠의 비밀> 가와카미 노부오,을유문화사,21쪽 [본문으로]
  2. <콘텐츠의 비밀> 가와카미 노부오,을유문화사,29쪽 [본문으로]
  3. <콘텐츠의 비밀> 가와카미 노부오,을유문화사,36~38쪽 [본문으로]
  4. <콘텐츠의 비밀> 가와카미 노부오,을유문화사,38쪽 [본문으로]
  5. <콘텐츠의 비밀> 가와카미 노부오,을유문화사,68~69쪽 [본문으로]
  6. <콘텐츠의 비밀> 가와카미 노부오,을유문화사,88~89쪽 [본문으로]
  7. <콘텐츠의 비밀> 가와카미 노부오,을유문화사,209~210쪽 [본문으로]
Posted by 시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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