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쟈키 하야오가 만들어내는 일본 애니와 , 픽사의 작품들을 가장 좋아한다.

독특한 세계관 설정과 따스한 시선이 담긴 만화를 보다보면 그때나마 순수해진다.


픽사가 처음엔 컴퓨터 하드웨어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혁신적 인력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으로 유출되지 않고 모인다는 저자의 책에서

픽사를 발견한 반가움에 기록으로 남긴다. 픽사 스튜디오 가볼 수 있을까 ?




픽사의 창의적 유전자 - <직업의 지리학>



픽사의 창의적 유전자는 유래가 깊다. 이 회사는 우상 대접을 받는 <스타워저>감독 

조지 루카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이후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게 인수되었다가

다시 디즈니로 넘어갔다. 설립 이래 이 회사는 예술과 기술 사이의 열정적 대화라는

정체성을 지켜왔다. 


처음에는 기술적 측면이 우세했다. 설립 초기 픽사는 주로 컴퓨터 하드웨어가

중심인 기업이었다. 이 회사가 출시한 '픽사 이미지 컴퓨터'는 병원과 의학 연구시설

들을 위해 그래픽 디자인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기계 값이 13만 5,000 

달러로 너무 비싸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혁신적 타가수정의 주목할

만한 사례로,존 라세터라는 한 종업원이 컴퓨터를 사용해 애니메이션 단편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는 픽사가 보유한 기술의 시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1984년 라세터는 어느 산업 박람회에서 <앙드레와 왈리 B의 모험>이라는 단편

영화를 상영했다. 그 영화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모두가 즉각 컴퓨터 만화영화

산업의 일대 도약을 이룬 작품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픽사로서는 본업을 발견한 셈이었다. 픽사는 하드웨어 사업 부문을 잘라내고

영화제작을 껴안았다. 오늘날 제약회사 연구소들과 생명공학 신생 기업들

사이에 끼어 있는 픽사 사옥은 상상력의 공장이자 테마파크이다.


이 회사는 영화 산업에서 지금까지 일해왔던 사람들 가운데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혁신가들,예술가들 그리고 괴짜들의 혼합체임을 자랑한다. 존 라세터는

이제 이 회사의 창작 담당 최고 책임자이며, 픽사의 최고 흥행 작품들을 다수

연출했다. 그의 예술적 천재성과 그가 입고 다니는 알록달록한 하와이 셔츠로

인해, 언론은 그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정장이 어울리는 사람은 분명 아니다.


픽사가 더는 컴퓨터 하드웨어를 만들지 않지만,예술과 기술 사이의 창의적

긴장은 지속되고 있으며 그것이 아마 기업 성공의 뿌리인 듯하다.

각 영화의 제작은 해당 프로젝트의 예술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심사숙고하는 과정이다.

글린 같은 기술 쪽 사람들은 스토리,등장인물들,시각 자료들이 꽃피울 수

있는 기법들을 개발함으로써 예술적 측면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상태에 도달한 혁신,즉 새롭고 가치 있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기술적 창의성과 예술적 표현의 융합이다. 기술적이며 예술적인

발전을 통해 픽사는 만화영화 예술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픽사는 각 가정의 안방에 알려졌으며, 전례 없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영화평론가들에게서 찬사를 받았다.

픽사가 받은 아카데미 상은 26개로,픽사 영화 한 편당 두 개가 넘는다.


픽사의 성공은 글린 같은 사람들의 재능,창의성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 가운데 많은 부분이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시대에,

꿈의 제조는 여전히 캘리포니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디즈니랜드를 닮은 회사 분위기,거대한 <토이스토리>인형들이 압도하는

회사 정원,만화영화 제작자들의 소굴에서 풍겨나올 법한 무질서한 분이기를

지닌 픽사는 철저히 미국적이다. 이런 회사의 본사를 중국 선전으로 

옮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 <직업의 지리학> 엔리코 모레티 , 김영사 , 78~80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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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0) 2014.01.19
Posted by 시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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